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1. 우리의 현실

  지구촌 곳곳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고통의 땅이 되어 가며 절박한 탄식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무너진 일상 속에서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환경 재난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난과 함께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형성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탄원과 고통이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앙의 삶과 방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두려움이 가득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온유한 사랑 안에서 우리 본연의 사명을 찾아내 식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말씀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느님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만들어졌네.”(시편 33,6)

  이 시편의 말씀처럼, 주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 안에서 당신을 계시하십니다. 그러기에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시편 1,1-3 참조)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했던 두 제자는 예수님 존재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멸시받고 배척당해 죽음에 이른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분을 그렇게도 열심히 따랐는데, 결국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군.’ 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하면서 되뇌었을지 모를 이 말은 어쩌면 ‘지금 여기’에서 예수님을 떠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 생각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두 제자와 나란히 함께 걸으며,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십니다. 믿는 마음에 굼떴던 그들은 식탁에 함께 앉아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실 때에야 비로소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씀을 통해 체험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불신으로 가득 차 냉랭했던 마음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던 이 체험은 결국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을 통한 체험은 2,000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성령 안에서 사랑의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기 위해서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성경 읽기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며 그 자체로 훌륭한 기도가 됩니다. 이는 말씀과 성찬의 전례가 결합되는 미사 안에서 절정에 이르며 완성됩니다.

3. 말씀살기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태어나고 그 말씀으로 살아간다.”(주님의 말씀 3항)

  성경은 하느님 백성이 모인 신앙 공동체에서부터 생겨났기에 “성경의 본래적 자리는 교회의 삶 자체”(주님의 말씀 29항)입니다. “하느님 백성에 의하여,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그 책은 바로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이며, 우리는 이 백성의 신앙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주파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의 말씀 30항) 성경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읽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홀로 이루는 길이 아니라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말씀을 접하고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함께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4. 피조물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메시지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며, 당신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선함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책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십니다.”(찬미받으소서 12항)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께서는 성경과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계시에서 배제된 피조물들은 없습니다. 피조물에 관한 관상은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가르침을 발견하게 합니다.(찬미받으소서 85항 참조) 모든 피조물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사랑의 친교로 불리운 소중한 존재들이며, 보편적 친교를 이루어야 하는 사랑의 실재입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배워 알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실의 아픔에 응답하며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따라서 말씀과 피조물은 더 이상 필요에 의해 선택되어 삶에 도움을 주는 미약한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의 길잡이여야 합니다. 

5. 춘천교구의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현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행동하고, 가난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정하며, 다른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목표를 세우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일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80항)

  교회는 산업 문명이 초래한 빈부 격차의 심화와 생태계의 파괴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대응하고 노력해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5년 5월 24일에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시어 신앙의 길에 참다운 이정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후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계 기후 상황은 바뀌지 않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생태계 파괴가 눈앞에서 일어나도 피조물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가난한 이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겠습니다. 

  이제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말씀과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7년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길다면 긴 7년간의 여정 동안 우리는 눈앞에 닥친 현실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인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사랑과 연민으로 지켜보며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눈빛을 진심으로 찾고 읽어내야 합니다.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 2,22)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우리 삶의 본질이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실천이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찬미받으소서 49항)에 응답할 수 있기를, 또한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7년 여정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위의 두 주제,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교구에서 실천 사항을 제안할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특별히 한반도에 사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남겨진 숙제가 참으로 많습니다. 다양성 안에서 우리 사회의 화합과 일치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 무엇보다도 이런 시기에 가장 고통받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의 사랑과 지혜를 모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러분과 이 여정에 동행하면서 경청과 식별의 은총을 청하고 여러분을 축복하겠습니다. 부당한 여러분의 주교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친애하는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을 지켜 주시고 축복하소서!

2021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일

주님 안에 일치하는

+ 춘천주교 김주영 시몬

춘천교구-찬미받으소서-7년-여정-실천표

<사목교서 관련 링크>
http://www.cccatholic.or.kr/index.php?mid=pastoral_letters2&document_srl=302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