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사목 지침
“빛의 자녀가 되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첫 회칙 ‘신앙의 빛’은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집필하시던 회칙을 보완한 가톨릭 교회 최고 권위자의 가르침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앙은 요술램프가 아니라 힘들고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빛입니다. 신앙은 공동의 선을 추구하고 우리 삶에 새로운 빛을 발견하게 하는 원천임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이 신앙의 빛은 겸손의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얻게 된다. 세속의 것을 중심으로 하느님을 바라본다면 그 신앙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빛과 어두움의 무게를 재지 마십시요  오로지 빛 속으로 들어 가십시요

빛과 어두움은 서로 상극이며 빛이 하는 일과 어두움이 하는 일은 서로 다릅니다

어두움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빛이 하는 일이 지금 현실에서는 바보스럽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눈을 감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조용히 그리고 끝없이 빛납니다

각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빛은 각 나름대로 “빛의 말씀대로 행하면 행할수록 그 빛은 더 커지며 그분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순명 하십시요 자신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께 순명 하면서 순종하면서 빛 속으로 들어 가십시요

이 정신을 묵상하면서 올 한해 우리의 사목지침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가 된다는 것, 더 이상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인 예수님의 희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더 이상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신앙에 내딛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교회는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가 되자.”

–          기도와 사랑 실천 그리고 선교

기도 : 성경과 성체 조배

사랑실천 : 실천적 가난과 자신을 내어주는 실천적 사랑

선교 : 그리스도의 빛을 이웃에게 전해주자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한 세 가지 행동 지침

1.       기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슈브리에 신부는 자주 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염원이다. 이것이 우리의 모든 인생의 목표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는 것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연구하고 아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것이 전부이다.  슈브리에 신부는 또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특별히 그의 제자인 사제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유용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앎만이 사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피에르 베르틀롱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예수님 곁에 머무르려는 원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앎의 열매이다. 이 앎은 반드시 사랑을 생겨나게 하고, ‘나에게 오너라’하고 말씀하시는 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한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이 응답은 자기 자신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스승을 따름으로써 실현된다. 슈브리에 신부님에게 있어서 이 앎은 우선적인 지적인 앎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만남으로서 모든 것 앞에 위치한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하느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한 누군가가 되게 한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만남은 우리를 반드시 회심으로 이끈다.”

이런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 특별히 복음 연구와 예수님의 현존인 성체 조배가 필요하다. 신앙인은 예수님과 만나야 하고, 만남 속에서 회심이 일어나야 한다.

2.       사랑의 실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예수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우리는 다음을 버려야 한다.”

먼저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자기 육체를 버려야 한다. 자기 정신을 버려야 한다. 자기 마음을 버려야 한다. 자기 의지를 버려야 한다.  세상의 재물을 버려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여기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정신적인 가난, 죄책감, 안도감, 측은 지심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고 따른다는 것은 구체적인 가난이 요청된다. 실제로 검소하게 살고, 조금 힘들지만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 빈 자리, 그 희생 속에 하느님을 향한 우리 마음이 자리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유하려는 마음으로, 하느님 바라보며, 얻을 수 있는 무엇으로 여길 때 결코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닮을 수 없을 것이다.

참된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강생의 신비를 묵상해야 한다. 강생을 깊이 묵상 할  때  왜, 무엇을, 어떻게, 버려야할 지 우리는 알 수 있다.

3.       선교

복음을 전하기는 신자로서의 의무이다.

신자든 비 신자든 모든 사람에게 교회의 어머니다운 염려를 보여 주며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특별히 배려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우리를 보내셨다.

종교적 다원주의가 만연하고, 가치의 척도가 돈과 물질에 영향을 받는 이때 복음은 하나의 이론이나 또 다른 가치의 척도로 여겨진다. 나아가 복음을 설명하고 이해시켜달라고 요청하는  1차원적인 접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과연 복음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설명되고 이해되는 무엇이라기 보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지평이요 척도가 되는 것이다. 복음 역시 마찬가지 이다. 1차원적인 접근으로는 복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율법 주의처럼 법과 지침으로만 여겨지는 복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음은 그 사람을 존재케 하고, 그 사람이 처한 현실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면 어떻게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랑이고, 상처받은 이들을 용서하는 자비일 것이다. 관심과 사랑, 헌신적인 자신의 내어줌, 그로 인해  비 신자들은 하나의 법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복음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선교를 허황된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